
홀스/ 우부야시키 카가야/ 그림/ @horse_kime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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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 / 우부야시키 카가야 / 글 / @jae_Ryung_J
[ 귀멸의 칼날 / 진영반전 합작 / 우부야시키 카가야]
Title. 기나긴 속풀이
Written by. 재령 / 공백제외 2070자
'첫 매듭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시작을 궤었는가?'
이따금씩 고요한 달님을 고풍스러운 술잔에 가두다 보면, 카가야는 오래된 처음의 흔적을 더듬었다. 확실히 '오니'라는 존재의 시발점은 자신이었다. 허나 막상 자신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려니, 시간의 무게가 더없이 육중하게 짓누르기 일쑤였다. 그러다 간신히 기억의 끝에 다가가면 갈수록, 아주 오래된 두통이 절 맞이한다. 그다음으로는, 희뿌연 연기로 뒤덮인 옛 과거의 파편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 그 가느다란 파편 위로 비치는 건 오로지 두 가지였다. 갑작스레 닥쳐온 죽음의 문턱에서, 살고 싶었던 '인간 카가야'의 간절함. 그리고, 늙은 의원과의 바둑을 뚜며 나누었던, 묵은 대화의 끄트머리.
- 당주께선 혹, 피안화의 상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우선 '이룰 수 없는 사랑'... 이라고들 하죠. 통상적으론 말이죠.
- 꽃말은 보통 그리 이르곤 합니다만... 조금 덧덧붙이자면 '이루어지지 않을 소망'이라고들 하기도 하죠.
- 흠...
- 왜 이걸 논하는지 궁금하다는 표정이시군요.
- 과연, 정확히 짚으셨습니다.
- 나리에게 부연 설명을 더 보태자면... 피안화는 흔히들 저승꽃이라고도 합니다. 지옥의 끝, 나락에서 핀다는 속설이 전해져오기 때문이죠.
- 저승꽃, 말입니까?
- '이루어지지 않을 소망'과 '저승꽃'. 두 말은 괜히 헛으로 나온게 아닙니다. 피안화의 진정한 효능을 가리키는 중요한 단서죠.
- 그 말은... 혹...
- 죽음만이 존재하는 지옥에서만 피어나는 꽃이 이루어지지 않을 소망, 그 자체라면... 결국 무엇이겠습니까?
거스를 수 없는 죽음을 극복하는, 불사(不死).
일족을 보살피던 늙은 의원이 죽기 전, 유일하게 당주인 제게 일러준 '푸른 피안화'의 존재가 바로 그것이었다. 다만 음침한 지옥에서만 피는 저승꽃이라 그런지, 불사를 얻게 될 질지언정 그에 따르는 저주 또한 만만치 않다고 덧붙였다.
- "그러니 정말 살고 싶다는 욕망을 우선시 하게 되는 순간에, 올바르게 선택하시길."
푸른 피안화를 짓이겨 조합한 작은 알약을 건네며, 의원은 그렇게 제 곁을 떠났다. 저를 향한, 안쓰러운 염려를 한껏 담으며. 그 염려의 잔흔이 미처 지워지기 전에, 카가야는 결코 찾아오지 않으리라 내심 호언장담했던 순간을 맞닥뜨렸다.
우부야시키 일족을 원망하는 자들로부터 암살 명령을 띤 자객들의 습격. 일족의 저택을 침범한 자로부터 입은 검상(劍傷)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불러왔고, 카가야는 아주 이른 선택을 해야 했다. 출혈로 몽롱해지는 정신줄을 간신히 붙잡으며, 무의식적으로 아직 세상을 놓고 싶지 않단 생존 본능을 앞장 세웠다. 그렇게 종국엔 품속에서 같찮은 알약을 움켜 삼키는 결말로 귀결되며-.
꿀꺽, 하는 신음과 함께, 반강제적으로 원치 않은 불사가 몸속을 잠식하던 때는, 너무나도 강렬했던 걸로 기억한다. 어찌되었든 간에 그 순간을 지나고 보니 자신은 이미 인간이 아닌 '오니'가 되어, 그로 인해 지금껏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다는 것만이 영원불변한 사실. 그 대가로는, 더 이상 햇빛이 없는 반쪽짜리 세상에서만 안주할 수밖에 없는 한계였다.
"......불완전한 불사, 라... 우습구나."
불완전한 불사란, 제법 무거운 죄업을 지고 가도록 떠미는 세상에게선 일말의 배려도, 다정함도 없었다. 그저 거짓된 상냥함만이 가득 차올라 저를 잠기게 만들 뿐. 잔잔한 미소가 걸린 제 입가에 진득한 핏물이 말라붙어가는 걸 지켜보며, 새삼 세상이 무척이나 불합리하단 생각에 먹혔다.
문득 '오니'라는 포식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내려다 보노라면, 어쩐지 공허함이 앞선다고 평하기 일쑤였다. 그래서일까? '인간'이었던, 피식자의 시선을 되찾으면 혹여나 이 미칠듯한 공허함이 매워지지 않겠냔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 의문들이 한데 응집되다 보니, 푸른 피안화를 다시금 찾아해매는 지금의 자신을 이루었다. 어찌 보면 제법 우스운 꼴이 되었지만, 아무렴 어떠랴? 끝없는 무언가의 갈증으로부터 저를 채워줄 구원해줄 가능성이 있다면, 그 어떤 모습이든 되어볼 작정이니.
의도된 결말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이 억지로 짜낸 운명에 순응하는가, 맞서는가, 그도 아니면 교묘하게 바꾸는가에 따라 무수한 선택지가 얽혀들어 갈 뿐. 토로하지 않았던 감정들을 심중에 버리며, 언젠가 고여 썩기를 바랬다.
"후우-."
나름 크게 내쉬어지는 한 갈래의 한숨. 그를 통해 폐부 깊숙이 순환하는 공기는 청량했고, 그만큼 복잡했던 속내도 한결 정리가 되는 기분이었다. 영롱한 달빛이 가득 찬 술잔을 기울이며, 카가야는 비소를 머금었다. 입꼬리가 호선을 그으며 이뤄지는 순간, 미세한 경련과 함께 그의 눈이 붉은 빛으로 번뜩인다. '시작의 오니'로서의 특권이 매섭게 발휘되는 찰나였다.
".....오늘도 내 아이들이, 새로운 아이를 맞이했구나."
뜻밖의 이명처럼, 귓가에서 찬란한 불꽃과도 같은 뜨거운 고동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이번엔 쿄쥬로쪽에서 새로운 아이들을 데려온 모양이네. 그렇다면, 서둘러 친히 발걸음을 옮겨, 새로운 아이를 성대하게 맞이해줘야겠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기나긴 순백의 소매가 바람결에 출렁인다. 불길하게 일렁이는 홍안이, 운치 있는 풍경을 안주로 삼던 제 자리를 힐끗 겉눈질한다. 동시에 반쯤 비워진 하얀 술잔과 여즉 고고하게 자리하는 달님을 번갈아서.
"밤은 길고, 술은 아직 많이 있으니..."
다시 저 자리로 돌아올 땐, 같이 술잔을 기울여줄 아이를 하나 데려올까나? 잡음 하나 없는 발걸음 소리가 서서히 멎어간다.
-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