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나 / 렌고쿠 센쥬로 / 그림 / @Juna_0130

마검/렌고쿠 센쥬로/그림/@EATEAT_S

いちご/ 렌고쿠 센쥬로/ 그림/ @GO_CHI_2

チュン/ 렌고쿠 센쥬로/그림/ @ZiDsIzeYHa0jjxn

재령 / 렌고쿠 센쥬로 / 글 / @jae_Ryung_J
[귀멸의 칼날 진영반전 합작 / 센쥬로]
Title. 끝없는 기다림.
Written By. 재령 (@Jae_Ryung_J)
‘센쥬로(千寿郎)-!!’
아아, 형님(兄上). 온전한 기억이 마지막까지 담았던 건, 존경하는 형님이 터뜨린 아득한 외침의 끄트머리였다. 분명, 제 상처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지시켜주는 비릿한 쇳비린내와 검붉은 핏줄기의 향연을 포함한. 주위에는 처참하게 부서진 목도 조각들이 이리저리 흩어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가지각색의 모양을 띈 피웅덩이와 형편없이 찢어진 더러운 옷자락. 그리고 굽이치는 황금빛을 품은 자잘한 머리칼들까지. 그야말로 진득한 홍련(紅連)의 연속이었다. 꾸역꾸역 목구멍 언저리까지 치솟은 핏덩어리를 억지로 삼키자, 꽤나 비릿한 철맛이 맴돌았다.
'나, 이젠 정말 한계야.'
까마득한 절벽의 끝자락에서, 기어코 유일한 지탱이었던 두 발이 힘없이 떨어진다. 이미 사나운 오니의 습격 아래, 제대로 된 항변 없이 걸레짝마냥 너덜너덜해진 상처투성이의 몸은 한계였다. 거기에 우악스러운 억지력으로 끌어올린 탓에, 한계에 다다른 기력과 유약해빠진 체력. 모든 악조건들이 맞물려지는 현실이 그저 야속할 뿐이었다. 이다지도 세상은 피조물에게 가학적이었다. '렌고쿠 센쥬로'란 소년에게 있어선, 아주 더더욱.
절벽에서 추락하는, 느린 시간의 연속에서, 센쥬로는 밀어닥쳐오는 자신의 모든 것을 빠르게 정리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주마등이라는 걸까? -라고 무의식적인 이해를 이어가는 동시에, 한 많은 미련에 붙잡히는 스스로를 인지할 수 있었다. 새삼스럽게도, 그 어쭙잖은 주마등이 스쳐 가는 순간엔 검술에 재능이 없는 저를 향한 원망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불꽃이 수호하는 렌고쿠가의 긍지를 지키고 죽을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던 걸까? 한없이 탁해지는 시야 너머로, 추락하는 저를 향하는 손이 보였던 것 같았다. 서로의 형제를 보듬었던 익숙한 큰 손이라는 걸 인지하는 순간, 잠시 다잡았던 속내가 울렁인다.
"센쥬로-!!!!"
제 이름을 담아 단말마처럼 포효하듯, 거칠게 내지르는 아득한 외침. 귓가에 치솟는 이명조차 이긴 혈육의 목소리에, 굳었던 눈매가 느슨해진다. 초점 잃은 금안이, 일순간 마지막 불꽃으로 타올랐다가 스러진다. 가차 없는 죽음으로 떠밀어지는 와중에도, 입가는 고요히 움직였다. 나직이 고해지는, 상냥한 염려.
죄송합니다, 형님.
어리석은 아우가, 이리도 야속하게 먼저 가게 되었습니다.
부디 저 때문에, 오래 아파하지 마세요.
..
어라...? 나 아직 살아있는 건가? 오니한테 쫓겨서...절벽에서도 떨어졌는데...
하지만 이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거 같아. 너무 아파... 괴로워. 온 몸이 아파, 숨 막혀.
형님, 아버지, 어머니- 제발, 누가 좀... 도와주세요, 나 여기 있어요.
이대론 너무 아파서 죽을 거 같아. 어서 빨리 안 아프고 싶어.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야.
형님, 어디계세요? 이러다가 전...!
"흐음, 과연 대대로 기둥을 맡아온 가문의 핏줄은 다른 건가?
부상을 입고 절벽에서 떨어졌어도, 아직 죽지 않았다니-."
목소리...? 누구지...? 하지만, 이 목소리는... 너무 무서워.
오니인거야...? 하지만 보통 오니와는 뭔가 달라...
"어차피 잘 되었군. 원체 실험은 대상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
게다가 기둥의 피를 이어받은 오니라면, 꽤 재밌을지도."
실험? 대상? 그것보다... 나...이제 죽는 거야? 하지만 난 아직 죽기 싫어, 살려줘.
살아서 모두를 만나고 싶어. 아버지랑 형님을... 어서 보고 싶어요. 죽고 싶지 않아-. 아프고 싶지 않아.
"어쩌면 네가 '가능성'을 쥐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재밌겠어.
특별히 네겐 피를 많이 나눠주지."
..
“싫어...! 싫어!! 애초부터 이런 건, 원치 않았어!!”
검은 도깨비의 조소로 굴려진 핍박과 날카롭게 쏘아지는 조롱. 그렇게 어지러운 정신이 끝없이 함몰되기를 반복한다. 무의식으로 빚어진 내면세계로의 도피를 이어가도, 저를 좀먹으려는 어둠은 계속해서 추격해왔다. 꾸물거리며 다가오는 잠식으로부터 열심히 발악하고, 작정하고 잡으러 오는 '검은 도깨비'에게 보란 듯 맞섰다. 한 치의 여유를 내어줄 수도, 밀릴 수도 없었다.
퇴화? 아니, 어쩌면 도태되는 것에 가까웠다. 다만 좋은 것들만 남기는 본래의 뜻과 다르게, 찌꺼기와 같은 것들만 추출되어버리는 반대의 뜻으로. '인간 센쥬로'로서의 정신은, 저를 이루는 것들의 태반이 도깨비가 빼앗아갔다는 걸 자각했다. 불균일한 호흡처럼 밀어 닥쳐오는 도깨비 피의 잠식. 그건 강인한 인간의 정신력을 앞장세워도, 끝끝내 막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 줌 남은 마지막 이성이 외쳤다. 발버둥을 칠 수 있는 한, 끝까지 버티라고-.
'센쥬로, 네가 어디에 있어도 이 형님이 널 꼭 구해주마.'
이젠 누군지 쉽사리 선별하기조차 어려운 목소리가 울린다.
'정신의 핵', 즉 자신을 이루는 구체의 불꽃위로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이 없다는 뜻이겠지. 미처 도깨비의 피에 잠식되지 않은, 아직까진 인간이란 정체성을 유지하던 센쥬로의 정신은 지금 마지막 도박을 걸어보려는 참이었다.
무의식을 이루는 정신의 가장 밑바닥인 '나락'. 즉 욕망으로 이루어진 끝없는 꿈 안으로의 도피. 어찌 보면 사상누각과도 같은 회피와 같았지만, 제겐 이것이 남은 차선이었다. 끊임없이 남은 인간성을 침범해오는 도깨비의 피로부터, 최대한 도망치기 위한 방책. 균열하는 무의식의 세계의 가장 추악한 밑바닥으로 꼭꼭 숨어버리면, 아무리 검은 도깨비라 한들 쉽사리 침범하지 못할 터. 그때까지 핵과 함께 숨죽인 채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보면...-
그러다가 도통 버틸 수 없을 때에 이르는 그 순간에, 스스로 핵을 깨어버리면 그만이야.
최악이자 최선은, 그때 가서 해도 괜찮을 거야.
교살되지 않은 작은 불꽃은 정신의 핵을 힘껏 끌어안으며, 그대로 무의식의 나락으로 추락했다. 어디 한 번 해보자란, 사활을 건 일념으로.
..
형님, 이곳에서 당신을 끝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버텨볼 수 있을 만큼 버티겠습니다. 그러니... 어서 절 죽-- 와야...-
그리고 암전.
'고귀한 공희(供犧)'
[* 공희(명사) : 신에게 희생 공물로 바치던 동식물이나 사람 ]
- 그말 그대로, 고귀한 헌신의 뜻을 내포하였으며, 렌고쿠 센쥬로 생전, 누군가를 위해 아낌없이 헌정되는 희생을 바탕으로 태어난 혈귀술. 오니가 된 그의 피가 굳어진, 불꽃모양의 결정화 된 보석을 삼키면, 그 어떤 오니든 일정시간동안 궁극적인 힘(또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의 피로 빚어낸 붉은 결정석에, 응축된 피의 함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때론 오니의 최대 능력 밖의 힘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한다. 그 출력량은 아직 무궁무진하며, 시전자(센쥬로)의 직접적인 의지에 따라 만들어지는 결정은 상상범위 이상의 초월하는 힘을 낼 수 있다고 추정된다. 다만...
"다만... 문제는 이놈이 깨어나질 않는다는 건가?"
"그래서 무잔님도 굉장히 고심하시는 모양이야~ 이 아이가 깨어나 직접 만드는 결정이라면... 어쩌면, 그분의 위대한 이상에 다다를 수도 모르니까."
"......"
실로 복잡미묘한 심정이었으나, 다소 불쾌함에 가까운 낯빛이었다. 순수한 투기로 빚어진 강함을 추구하는 아카자의 입장으로선, 센쥬로의 혈귀술은 어찌 되었든 한낱 신기루에 지나지 않은 '가짜'로서의 강함이었다. 센쥬로를 향한, 상극에 가까운 혐오가 간극을 오갔다. 그런 아카자를 탐색하는 듯한 무지갯빛 시선이 지나치다가, 이내 나머지 부연설명이 이어졌다.
"보다시피 아이가 스스로 눈을 뜨는 걸, 필사적으로 거부하고 있어. 이건 아무래도 '인간'이었을 때의 정신력의 문제라…. 무잔님께서도 개입하는 한계가 있지."
“....그래서?”
“결론은 기다려야지. 스스로 눈을 뜨고, 오니로서 직접 우리들을 마주할 때까지.”
'내가 이놈을 너무 얕봤군. 녀석은 대항할 창만 없을 뿐, 어찌 보면 누구보다도 가장 단단한 방패를 가지고 있었다.' 무잔의 독백어린 자조를 떠올리며, 도우마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자조를 잔잔히 띄울 뿐이었다. 잠깐의 침묵이 오갔다가, 장난끼가 섞인 질문이 툭 내뱉어졌다.
"아카자공, 이 아이 꽤 예쁘지?"
"너, 또 헛소리를."
"그러고 보니, 기둥이었던 아이의 형을 아카자 공이 죽였다고 하지? 동생인 이 아이와 죽은 형과 비교하면 어떤지 알려주겠어?"
"....내가 네놈에게 알려줄 필요 따윈 없다."
"흠, 아쉽지만 아카자공이 알려주기 싫어한다니까 어쩔 수 없지~"
그렇지, 센쥬로군? 부드러운 손길과 함께, 살짝 흐트러진 황금빛 머릿결이 차분하게 정돈된다. 센쥬로는 그렇게 스스로, 세상을 등진 채 영원토록 눈을 감는 걸 택했다. 그것이 마지막까지 잃지 않으려던, '인간'으로서의 저항. 그저 하염없는 영겁의 시간을 지나, 자신의 숨을 거둬가는 불꽃을 기다릴 뿐이었다. 아주 깊은, 꿈의 밑바닥에서 숨죽인 채 조용히.
아아, 부디 어서 와주세요.
내 목숨을 거둬줄, 나의 불꽃, 나의 형님-.
저의 이 기나긴 꿈을, 가장 상냥한 죽음으로 끝맺음을 지어주세요.
-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