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EN / 카마도 탄지로 / 그림 / @jen_ilz

타나/ 카마도 탄지로/그림/@t_a_n_a_2020

재령 / 카마도 탄지로 / 글 / @jae_Ryung_J
[귀멸의 칼날 진영반전 합작 / 탄지로 ]
Title. 거짓말
Written By. 재령 (@Jae_Ryung_J)
공백제외 : 2544자
기구한 팔자를 지닌, 한 소년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상냥한 사람이'었'으며, 가장 상냥한 '오니'가 된 아이의 이야기를-.
누구보다도 거짓말을 끔찍이 싫어하는, 아주 가여운 아이의 이야기를.
..
- "이 아이는 분명 신의 사랑을 받은 아이야."
- "분명 신께서 이 아이에게 행복한 길만을 걷게 해줄 거야."
선연한 붉은 빛으로 영롱이는 눈동자와 동시에 같은 붉음을 품은 머리카락. 덧없고도 자그마한 생명에 부여된 특징들을 본 사람들은 한데 입을 모아 그리 축복했다. 숯쟁이, 즉 불을 다루는 집안에서 태어난 길한 혁작의 아이. 오랜 산고에 지친 어머니와 자애롭게 절 품에 안아 든 아버지도, 이구동성으로 저를 향해 행복한 아이라고 일렀던 것 같았다.
"언제나 행복하렴, 탄지로."
자상한 두 쌍의 시선과 온화한 미소들이 한데 조화로이 맞물린, 부모님의 진심 어린 축복. 섬세한 손길로 절 보듬는 어머니의 품에서, 탄지로는 분명 이 눈부신 행복이 제 곁에 오래오래 있어 줄 거라 믿었다. 한 점 티 없는 순수함으로 빚어진 믿음으로, 행복을 믿었다. 제아무리 숱한 불행이 찾아와도, 그들보다 더 큰 행복이 다시 절 끌어안아 줄 거라고. 그 하나만을, 끔찍한 학살의 여파에서 비껴간 13살의 '나'는 믿었다. 핏빛으로 물든 희생을 발판삼아 나아가던 15살의 '나'도 믿었다.
그건 필경-
과거의 '나'들이 맹목적으로 믿었던 가짜 신앙, 즉 저주받은 거짓말이었다.
게걸스러운 도깨비의 핏물에 잠식하던 순간에서야, 소년은 여태껏 믿었던 행복이 교활한 거짓말임을 인지했다. 이건, 나에게 정말 너무하잖아. 사정없이 '인간'으로서의 저를 침몰시키는 저주에, 생전 처음으로 어리석은 스스로를 책망했다. 끝 모를 원망에 허덕이던 와중, 가느다란 속눈썹 사이로 어느덧 물이 고여있었다. 툭. 곧 간신히 돌아가던 사고회로가 끊긴다. 도깨비로부터 붕괴하는 몸속 깊이 침투해오는 혼돈에, 더이상의 자각을 회피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 무엇이든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저 이대로 조용한 죽음이 제 숨결을 꺼뜨려주길 바랄 뿐이었다.
-"거짓말이지, 탄지로....?"
-"오빠... 안돼... 오빠...!"
-"탄지로....!!"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로 돌아오는 건 순식간이었다.
어느덧 메여오는 목울대가 울렁이며, 시원한 물이 아닌 뜨거운 피(血)에 갈증한다. 탐욕스러운 굶주림은 인육(人肉)을 끊임없이 갈구한다. 치밀어오르는 새로운 본능에, 원치 않았던 욕망에, 붉어진 눈사위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동료들이 저를 향해, 일제히 일륜도를 겨눈다. 그토록 지켜주고자 했던 여동생이 저만치에서 절 향해 울고 있었다. 그리고 시시각각으로 명백하게 엇박자로 소용돌이치는 새로운 감각들이 있었다. 종국엔, 외면하고 싶은 결론이 도출된다.
'아아, 그래 나는...'
정말로, 오니가 되었구나. 분명 자신을 감싸주리라 믿었던 행복이 끝까지 절 배신했다는 걸 입증하는 꼴이잖아. 무자비한 거짓말에, 탄지로는 앞으로 나아가는 걸 포기하고 뒷걸음질 쳤다. 찢어발기어진 순수한 꿈을 내팽개치며, 그들로부터 도망쳤다.
..
"이젠 지긋지긋해...!!"
별안간 북받치는 감정에, 온 몸이 들썩인다.
괴물이 된 그 날부터 얼마나 내달렸는지 모르겠다. 급속도로 변화된 몸을 이끌고, 겨울이 내린 산속에 틀어박히는 게 최선의 고작이었다. 잠시 멈춰서기만 하면, 지금의 제가 만든 죄악들이 꾸물거리며 각각의 몸을 일으키기 일쑤였다. 억지로라도 멈추는 법을 망각하고, 무조건적으로 그들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쳐야했다. 그들을 비롯한 모든 불행들의 집합점에는,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이라는 맥락이 교활하게 끼어있었다. 행복이 선사한 거짓말에 꾀여간 많은 '나'들이 도망치는 나에게 책망하는 눈빛을 보내기 일쑤였으니까.
자신에게 있어 숱한 시간이 늘 행복이었으며, 동시에 절망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 무지한 스스로가 원망 그 자체였다. 차츰 고앙된 심중의 고함을 눌러삼키며, 추위에 말라가던 고목에 뒤통수를 맞대었다. 과분할 정도로 소복이 쌓여가는 눈송이들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와중이었다. 마른기침이 연거푸 터지던 와중, 어딘가 변해버린 눈동자에 맺힌 상으로부터 무언가가 제법 선명하게 나타난다. 아아, 너로구나. 그것의 정체를 인지하자마자, 호흡처럼 이어지는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진짜... 나 한심하지?"
"..."
"그래서 다시 돌아가고 싶어... '너'에게로... 적어도, '인간'이었던 예전의 나로..."
희미해지는 시선의 끝에 멈춰서보면, 하염없이 울고 있는 13살의 자신이 있었다. 자그마한 네즈코의 손을 마지막 구원인 것 마냥 꼭 붙잡은 채, 절 향해 의미모를 눈물을 가득 쏟아내라며. 그 애처로운 '과거'에게, 지금의 나는 무어라 말을 건네야 할까? 입가 위로 가학적인 자조가 물씬 어렸다.
"너도, 나도.... 우리가 지은 잘못이 아닌데... 원하지도 않았는데..."
여전히 너는 서럽게 울고 있는데도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어 미안해. 결코 닿지 않는 사죄란 걸 알면서도, 거듭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이 한심했다. 막연한 시간을 쫓아 달린 끝에, 지금이란 초라한 자신에 다다르는 현실이 참혹할 따름이었다. 여전히도, 자꾸만 손짓해오는 슬픔이 퍽 잔인하다. 결국 우리들은, 그 손짓에 마냥 길들여진 채 우직하게 나아가기만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혐오했던 괴물로 변모된, 추악한 나였지. 또 다른 조소가 나지막하게 터진다.
"난 히노카미님의 사랑을 받은 아이라면서요. 신의 사랑을 받으면, 분명 행복해진다면서..."
그 말만 믿고, 꼭 행복해질 거라 순수하게 믿었던 내가 바보 같잖아요. 그런데 이게 뭐야? 난 이렇게나 끔찍한 괴물이 되어버렸는데. 토막토막으로 갈라진 채 우러나오는 말들에는, 욱여왔던 피울음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냥 모두 거짓말이었잖아요."
신의 사랑 같은 건 없었잖아요. 나는 행복해질 거라는 것도, 모두 거짓말이잖아. 결국, 한탄으로 점철된 오열이 입밖으로 튀어나왔다. 제법 날이 선 송곳니를 꾹 앙다문 입안에서, 익숙해진 비릿함이 터졌다. 창백해진 볼 위로, 한 자락의 눈물이 고요히 흘러 내렸다. 냉기를 품은 눈보라에 금세 말라붙어 사라지고 말았지만, 그 잠깐의 열기는 영원토록 절 괴롭힐 것을 직감했다. 최악에 이지러진 흐느낌이 도통 멈추지 않았다. 어찌 보면 괴물이 된 자신에게 우는 것조차 사치이며, 조악한 죄악이었다. 그런데도 이 울음을 멈출 수 없는 건, '인간'으로서의 자신에게 바치는 못다 한 사죄의 일부분임을 알고 있었기에. 겨울에 얼어붙은 시간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부탁이야.
제발-
누가 좀 도와줘요.
거짓말에 속은 날 구해줘요.
죽여주세요.
죽여주세요.
이끼 / 카마도 탄지로 / 글 / @E_KKIxxx
카마도 탄지로가 렌고쿠씨게 올립니다.
아아, 왜 먼저 가신겁니까. 엊그제 임을 뫼셔 광한전에 올라간 줄 알았더니만, 아니었습니다. 꽃은 다시 필 날 이 있지만, 사람은 다시 소년이 될 수 없습니다. 젊은 날을 헛되이 보내지 말아주오. 청춘은 다시 오지 아니 합니다.
'늙는 것도, 죽는 것도 인간이라는 덧없는 생물의 아름다움이다! 늙기 때문에, 죽기 때문에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럽고 존귀한 거다. 강함이라는 말은 육체에만 쓰이는 말이 아니야. 이 소년은 약하지 않다! 모욕하지 마라.'
그 사이에 한이 맺혀 하계에 내려가신겁니까..?
꽃은 봄이면 피었다가 가을에 지고 다음 해 봄이 되면 또다시 피어나지만 사람의 인생이란 한 번 흘러가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또한 인생이란 연습이 있을 수 없고, 단 하루라도 연극일 수 없으며, 지나간 날을 되돌려 다시 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차라리 그것이 연극이었다면, 꿈이었다면. 당신은 저 말고도 다른 사람들을 따뜻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구원하셨겠지요...
안개 낀 강가에 머물며 배를 옮기니, 저문 날 나그네 시름 새삼스러워. 들이 넓으니 하늘이 나무 위로 낮게 보이고 강물이 맑으니 달이 사람을 가까이하더군요. 봄과 가을에 하늘을 보면 보금자리를 찾아 떼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떼들을 볼 수 있는데, 마침 그때 바람이라도 불면 마치 바람이 기러기 떼를 몰고 가는 것같이 느껴집니다. 당신도 이것을 함께 느꼈으면 참 좋을 것인데...
검은빛 바다 위를 홀로 저어 가는 밤 배를 외로이 하늘에 떠 있는 달만이 쓸쓸하게 당신을 기억하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더 이상 당신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말을 하였으며 어떤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는지 서서히 잊혀만 가는데, 오로지 하늘가에 홀로 떠 있는 달만이 기억하고 있는 게 새삼 다 부럽더군요.
세상이 잠들 때쯤이면 어두운 하늘을 환히 밝혀주는데 그것이 꼭 당신이 웃는 것만 같아, 안개가 걷히고 달이 뜰 때 어둑어둑한 넓은 광야에서 지평선 끝을 바라보면 마치 하늘과 땅이 닿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종종 들곤 합니다. 꼭 당신이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배를 타고 돌아올 것만 같은 것처럼요. 그런 날에는 유난히 하늘이 낮아 보이고, 맑은 날 밤에 강가에 가보면 강물에 달이 비쳐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이 달이 가까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잠시 그럴 뿐. 정신을 차려보면 저를 비추고 있더군요.
렌고쿠씨 혹시 그거 아십니까? 아주 가늘게 내리는 가랑비와 미세하게 부는 산들바람은 실내에서는 알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동그랗게 퍼지는 연못의 파문을 보면 비가 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살랑살랑 흔들리는 나뭇가지에서 바람이 불고 있음을 알 수가 있죠. 하지만 꽃이 웃는다고 표현하더라도 사람처럼 웃는 것이 아니므로 꽃의 웃음소리는 들을 수 없고, 새가 운다고 표현하더라도 역시 새의 눈물은 볼 수 없습니다.
한 달에 아홉 끼니가 고작이고 십 년을 관 하나로만 지냈습니다. 누차함 이보다 더할 수 없지만 언제나 얼굴빛 아름다워라. 내 당신을 보고자 하여 새벽에 강나루 건너갔었습니다. 푸른 소나무는 길을 끼고 자라고 흰 구름은 처마 끝에 머물더군요. 내 부러 찾아온 뜻 알고 있는지 거문고 끌어당겨 날 위해 줄고르덥니다. 고음으론 별 학조로 놀라게 하더니, 저음으론 고란 조로 가라앉히더군요... 바라건대 그대 곁에 머무르면서 지금부터 한겨울 지내봤으면 합니다.
아, 그리고 산마루에 떠 있던 해 서쪽으로 훌렁 지고 연못에 비치는 달 천천히 동쪽으로 떠오르는 것이 당신을 연상하게 만들더군요. 서늘한 밤바람에 머리를 풀어헤치고 대청 열어젖히고 한가로이 누웠더니 연꽃 바람은 향기를 보내오고 대나무 이슬 맑은 소리로 떨어지고. 거문고를 가져다 뜯으러 하다가도 들어줄 벗 없음이 못내 한스러웠습니다. 그러자니 당신 생각 더욱 간절해 한밤중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을는지. 이렇게 닿지도 않을 편지를 올려봅니다.
카마도 탄지로 올림.
엘/ 카마도 탄지로/ 그림/ @Elquannes
